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
― 전명자 화백 화업 반세기(2), 그 전후사의 키워드를 가름하여
미술평론가 김복영 |전 홍익대학교 교수, 철학박사⋅미학예술학
들어가며
전명자 화백에 대해서 필자가 평문을 쓴 건 두 번이었다. 먼저는 1994년 갤러리 현대(서울) 전에서였고 두 번째는 2017년 「선 갤러리 초대전」에서였다.
앞의 평문은 후일 2009년 성남아트문화재단 주최 전명자 특별전(1960~1990)에 재수록 되었다. 이 글에서는 1960년대의 《울산바위》, 《흰 모란》, 《토끼와 소년》과 1970년대의 《장미원》, 《탈춤》, 《할머니와 손자》, 1980년대의 《피아노와 조각》, 《토끼가 있는 정물》, 《해운대》, 《외설악 초설》에 이어 1990년대의 《창너머 성전》, 《국화의사당이 보이는 창》, 《장미와 바이얼린》 등 당시 대한민국 국전풍의 구상적 자연광경과 꽃과 악기를 소재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추가하는 양식을 보여주었고, 《노트르담 다리》, 《센느에서 본 에펠탑》, 《미라보 다리》 같은 파리의 풍경을 소재로 마음의 창으로 보는 삶의 이야기와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에메랄드그린의 커튼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장미와 바이올린을 모티브로 다루었는가 하면, 한국의 명동성당, 해운대, 낙산사를 소재로 자신의 삶을 일기체로 다루는 데서 구상적 재현을 빌려 내면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던 걸 소개한 바 있다.
그 두 번째의 평문은 2천 년대로부터 시작되는 후기시대의 《자연의 조화》, 《오로라를 넘어서》, 《금빛 해바라기―그림속의 가족여행》으로 일관되게 명명되는 작품들을 소개했었다. 필자는 후기 시대의 작품 분위기를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전 화백의 후기 작품들은 명제가 시사하는 것처럼, 전기의 소재를 재등장시켜 인간의 온갖 비극을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유토피아로 전환하는 데 있었다. 이는 비극을 앞에 하고 절규하는 북구(北歐)적 화풍이 아니라 이를 희망으로 녹여 일상의 세계로 승화시키려는 데서 독자의 세계를 열었다. 이 시기의 테마는 인간이 자연을 버림으로서 비극이 이루어졌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특히 상상 공간에서 복락원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데 희망을 걸었다’(「선화랑 초대전」 2017, 서문).
전후사의 경계구분 이야기
이처럼 간략히 언급한 전 화백의 전후사 구분은 공교롭게도 필자가 평문을 처음 썼던 시기(1994년)이자 작가가 프랑스유학시절 파리아메리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제32회 칸느 국제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던 1995년을 분수령으로 화업 30여년을 맞던 때였다. 이를 계기로 전명자 화백은 자신의 시대사의 전환점이자 화업초기(1960s)이래 30년사를 마감하고 후기시대 30년사를 새로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를 전후하여 그 이전과 이후의 회화적 이념과 방법에 있어 차별화를 명시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마디로 공간중심의 재현적 형상성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형상에 시간과 생명의 약동을 융합해서 현전의 이미지를 다루느냐의 변별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화론적으로 말해, 이는 사물의 정태적인 형상을 지칭하는 지각표상(知覺表象, la représentation perceptrice)을 재현할 것이냐 아니면 동태적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변적 이미지의 현전(現前, la présence changeante)을 다룰 것이냐를 변별코자 하는 데 있었다. 이 시기의 변별점을 이야기했던 계기는 전기한 파리아메리칸 아카데미의 수학과 이해 제3회 칸느 국제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파리아메리칸 아카데미 교수를 역임하면서였다. 이러한 사회적 국제화의 등극 못지 않게 이 시기에 변화를 야기한 건 시간과 생명의 약동(le temps et l'élan vital)에 대한 의식적 전향이었다. 여기서 후자에로의 방향전환은 전기 시대의 공간중심주의(espace-centralisme)로부터 후기 시대의 시간중심주의(temporellisme)로의 적극적 전향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전환의 동기를 제공한 건 1995년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노르웨이 여행에서 목격한 오로라의 충격이었다. 거기서 작가는 생의 황홀을 경험하고 자연의 시간이 연출하는 지상 최대의 스펙터클을 자신이 지향하고 동경해 마지 않던 세계와 동일화하는 데 이르렀다. 다음의 일절이 이를 말해준다.
오로라는 자연이 연출하는 최고의 쇼였어요. 천국과 극락을 보여주는 빛 같았어요.
그 푸른빛과 마주하면서 나 자신이 완벽하게 녹아내리는 것같은 강열한 느낌을 받았지요.
이번 달에도 오로라를 보러 노르웨이로 떠나요.
지구상에서 펼쳐지는 신비롭고 황홀한 오로라를 보면서 저 너머에 무한한 우주가 있고
그 속에 있는 수많은 은하계 어딘가에 지구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우리 인간을 닮은 생명체가 있으리라 상상했어요(「작업노트」 1995).
전 화백의 후기 시대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작가에게서 오로라는 오로라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 충격적 체험이 작가의 예술에 잔영을 드리우게 된 건 운명적이었다. 당시를 회고하는 글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다. ‘여기서 시간과 생명의 약동이 작품의 전 콘텐츠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심연의 바다같은 푸르션블루를 얹거나 사람과 나무 등 미물이 우주의 드넓은 대해에서 부동하는 양상으로 그려지기에 이르렀다. 이후 20여 년간 오로라를 작품으로 시연하면서 푸른 빛, 체리 같은 붉은 핑크빛으로 생의 신비와 기쁨, 생명의 약동을 표출하는 절차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작가의 작업은 자연이 베푸는 순수함과 풍요를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향유할 지를 다루는 데 있었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무한한 영감가운데서 관객이 작가의 작품을 보는 순간 고된 삶에서 해방됨으로써 여유와 감동을 나눌 걸 기대하고자 했다’(선화랑 초대전, 2017 <서문>).
여기서 금빛으로 세필한 해바라기는 영원한 빛의 근원인 태양의 아바타이자 상징으로 등장하였다. 작가는 이를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직접 이글거리는 황금 빛 해바라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를 부추기는 마을과 강, 포도와 밀밭, 기와지붕과 기둥은 시간의 세계를 구현하고 초월적 환상을 불러오는 품목으로 다루어졌다. 이처럼 후기 시대는 노르웨이의 오로라와 토스카나의 해바라기에서 영감을 받아 푸른 심해와 하늘빛의 초월적 세계를 부각시키는 양식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는 한 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시간과 생명의 약동을 표출하기 위한 작가 자신의 인격적 대리물을 필요로 했던 바 화목한 가족, 사랑스런 연인들, 오케스트라, 피아노와 하프를 연주하는 여인, 회전목마가 그것이라면 꽃과 나무, 하늘과 맞닿은 오로라가 쏟아지고 솟구치는 정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무대이자 배경이었다.
주제어에 대한 이론적 보유(補遺)
전명자 화백의 작업 반세기는 이처럼 전후사의 키워드로 보았을 때 전기의 표상(représentation)적 재현 중심의 양식과 후기의 비표상(非表象, non-représentation)적 현전(presence)중심이라는 ‘2분법적 양상’(la manière dichotomique)을 보여준다. 전자의 재현양식은 우리의 감관을 기반으로 하는 지각(知覺, Perception)에 의해 바깥의 사물과 눈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상(象, l'image)의 일대일 대응으로서, 이른 바 사상(寫像, mapping)의 재현을 뜻한다면 후자의 현전양식은 일대다(多)의 대응으로 앞서와 같은 사상이 해체되는 경우를 뜻하고 광학적으로 지각표상이 깨지는 경우는 물론 의식의 분열에 의한 병리적 형상까지를 총칭한다. 문제는 전 화백의 후기와 같이 오로라의 스펙터클의 경우, 광자의 입자들과 지표의 자기장의 충돌이 빚는 오로라 현상은 지극히 자연적인 극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자극을 받아 오로라와 각종 자연풍광을 융합한다든지, 해바라기의 광희가 요란한 황색집단과 각종풍경, 평화로운 동물과 콘트라베이스를 타는 인물, 바이올린과 오로라, 장미의 스펙타클과 음악놀이, 겸재풍의 풍경과 음악가족을 아우르는 선경이나, 오로라의 실폭포와 애마들을 융합한 비경의 연출은 모두 비표상으로서의 현전들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표상은 어원학적으로 앞에다(vor-) 세운다(stellen)는 뜻의 독일어의 합성어가 시사하는 것처럼 주체B와 사물A의 일대일의 사상(寫像)적 대응을 뜻하고 일체의 리얼리즘의 근본원리를 칭한다면, 비표상은 어원상 이러한 사상적 대응의 반대 개념으로서, 사상이 불가능한 객관적인 수다한 사례나 주관적⋅인위적 불가사상(不可寫像)의 온갖 사례를 지칭하는 게 된다. 전 화백이 오로라에서 시사를 받은 돌발적 영상과 기대하는 각종평화의 정경을 융합하는 표현주의적 양식은 모두 후자의 현전양식에 속한다 할 것이다.
나가며
이러한 ‘뒷받침 이야기’는 전명자 화백이 후반기에서 시도한 한국 현대미술의 구상회화의 양식의 한 전형으로서 추앙되기에 충분하리라. 그건 이중섭(1916~1956)과 장욱진(1917~1990), 유영국(1916~2002), 천경자(1924~2015), 그리고 초기 한국 신사실파 작가들이 일시 일구었던 현대구상화가 서구 근대주의의 동점에 의한 비구상회화의 세에 밀려 그 지위를 상실한 이래 이렇다 할 맥을 찾지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화백의 현전 방식에 의한 구상양식의 시도는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굳건한 방법의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202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