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랑에서는 2022년 11월 25일부터 12월 24일까지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이라는 부제 아래 이만나(B.1971) 개인전이 열린다. 이만나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 속에서 느끼는 낯선 경험의 순간들을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기법으로 그려낸다.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은 분명 특정 대상의 재현이고 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실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의 이면을 끌어낸다고 할 수 있다. 박영택 평론가가 일찍이 표현했듯이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위치한 풍경’이다.
“카뮈는 외부 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내가 ‘낯섦’이라고 말하는 느낌에 대한 가장 적합한 설명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한 바 있다. 우연한 맞닥뜨림으로 인해 매번 접하는 일상의 공간이 어느 날 자신을 사로잡는 낯섬으로 다가오는 찰나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만나의 그림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를 접촉할 때 생기는 특별한 기억과 마음의 일렁임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보이는 대상의 풍경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바라보았던 풍경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뒤집어 보여 준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의 화폭에 자주 보이는 가로막힌 벽, 낯선 길, 어두운 밤, 신비스러운 설경 등 작가가 그간 보여주었던 객관과 주관성 사이에 놓인 듯한 생경하고 모호한 풍경들은 감상자에게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인도해 준다. 이번 전시는 개발로 인해 저항 없이 제거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 속의 풍경들을 소환해 내었다. 급속도로 재건축이 전개되는 도시의 모습은 현대적이고 새로운 풍경으로 탈바꿈되어 금세 우리의 눈을 변모한 풍경 속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변화 뒤에 가리어진 그 장소로 인한 아름답고 특별했던 추억과 기억 또는 그곳의 존재해온 시간의 축적과 역사가 그냥 퇴색되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사회 풍경, 풍토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 시사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초고속으로 빠른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작금의 사회에서 우리가 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거나 잊고 지내는 것들에 대한 성찰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뒷산 위로 신기루처럼 신축 아파트가 솟아오르면, 어릴 적 기억 속에 길을 잃을 정도로 깊숙했던, 나름 마을의 영산(靈山)이라 여겼던 그 산은 한낱 언덕이 되어버린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절개된 산자락, 아름다운 숲이나 평야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 언제나 건설적인 이곳의 속도감은 위협적이지만, 우리에겐 지극히 익숙하고 평온한 풍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충된 감정과 이질성의 묘한 조화가 바로 우리의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이런 과도적 풍경을 이른바 ‘Korean Beauty’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터널 위에 위태롭게 집들이 자리잡은 그 풍경을 처음 보았을 때, 나에겐 그 모습이 마그리트의 그림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그곳의 풍경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산 자락에 얼기설기 자리잡은 판잣집이 몇 차례 도시정비를 거쳐 그렇게 전형적인 한국식 주택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 테고, 198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든든한 터전이었던 발 밑에 거대한 동공(洞空)이 뚫리게 된 것이다. 이런 낯선 인상조차 어느새 정감 있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익숙해질 무렵, 돌연 푸른 천막이 집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신축 아파트의 구조물이 솟아오르는 모습은 가히 초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가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회화가 그러하듯, 그런 아름다움은 애써 붙잡으면 이내 사라져버리거나 때로는 채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뒤편에 있던 낡은 담벼락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그러했다. 담 뒤편으로 가림막이 쳐지고 공사가 진행되더니, 2013년 미술관 개관 전에 완전히 철거되어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 벽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고 난 후에야 그곳을 소재로 5 점의 벽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우연히 그곳을 발견하고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만 해도 그 운명을 짐작하진 못했지만, 그날 뜬금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골목길로 나의 발길을 이끈 건 사라져가는 것들의 어떤 끌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역사와 기후와 시간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던 것들을 긴 호흡으로 되살린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지켜주지 못하는 것들에 따뜻한 시선이나마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는 그렇게 여전히 이행(移行) 중이어서 낯선, 영속적이지 않아서 아름다운 우리의 풍경을 위한 헌시이다.
A Landscape That Is No Longer There
When a newly built apartment structure rises like a mirage over the mountain behind the village, the mountain becomes a mere hill. But in my childhood memory, it was the sacred mountain of the village which was so deep that I got lost in it. The foot of a mountain cut off to make a road and the high-rise apartment buildings abruptly rising between beautiful forests and plains. The sense of speed here, which is always constructive, is quite threatening, but it is also an extremely familiar and peaceful landscape to us. Since this strange harmony of conflicting emotions and heterogeneity reflects our present, it may be proper to call this transitional landscape ‘Korean Beauty’ as many people say. When I first saw the landscape of houses perched precariously above the tunnel, it seemed as unfamiliar to me as René Magritte's painting. Of course, the scenery there would not have been like that from the beginning. Perhaps the shacks located at the foot of the mountain have undergone a few rounds of urban redevelopment to have the appearance of typical Korean-style houses. At last, in the 1980s, a huge hole was made under the feet, which had been a solid foundation of life. Around the time even this strange impression had become accustomed to me as a familiar Korean beauty, it was surreal to see blue tents suddenly replacing the houses and the structures of newly built apartments rising up. And autumn was deepening beautifully. Just like painting, such beauty disappears as soon as you grab it, or sometimes it is not there before you even get close to it. The same was true of the works about the old wall behi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A fence screen was put on the back of the wall and the construction was carried out. The wall was completely demolished before the opening of the museum in 2013 and is now gone forever. It was only after I realized all of the wall had vanished that I painted 5 murals based on the site. Even when I happened to discover the place and made up my mind to paint it, I had no idea of its fate. However, it may have been some kind of attraction to disappearing things that led me to an alleyway that day that I did not even know very well. I bring back all the history, climate and moments of the place from a long-term perspective. With the hope that a warm gaze will stay for a long time on all things that disappear and cannot be protected. This exhibition is a tribute to our landscape, which is beautiful since it is still in transition, unfamiliar and not permanent.
“카뮈는 외부 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내가 ‘낯섦’이라고 말하는 느낌에 대한 가장 적합한 설명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한 바 있다. 우연한 맞닥뜨림으로 인해 매번 접하는 일상의 공간이 어느 날 자신을 사로잡는 낯섬으로 다가오는 찰나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만나의 그림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를 접촉할 때 생기는 특별한 기억과 마음의 일렁임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보이는 대상의 풍경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바라보았던 풍경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뒤집어 보여 준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의 화폭에 자주 보이는 가로막힌 벽, 낯선 길, 어두운 밤, 신비스러운 설경 등 작가가 그간 보여주었던 객관과 주관성 사이에 놓인 듯한 생경하고 모호한 풍경들은 감상자에게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인도해 준다. 이번 전시는 개발로 인해 저항 없이 제거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 속의 풍경들을 소환해 내었다. 급속도로 재건축이 전개되는 도시의 모습은 현대적이고 새로운 풍경으로 탈바꿈되어 금세 우리의 눈을 변모한 풍경 속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변화 뒤에 가리어진 그 장소로 인한 아름답고 특별했던 추억과 기억 또는 그곳의 존재해온 시간의 축적과 역사가 그냥 퇴색되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사회 풍경, 풍토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 시사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초고속으로 빠른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작금의 사회에서 우리가 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거나 잊고 지내는 것들에 대한 성찰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뒷산 위로 신기루처럼 신축 아파트가 솟아오르면, 어릴 적 기억 속에 길을 잃을 정도로 깊숙했던, 나름 마을의 영산(靈山)이라 여겼던 그 산은 한낱 언덕이 되어버린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절개된 산자락, 아름다운 숲이나 평야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 언제나 건설적인 이곳의 속도감은 위협적이지만, 우리에겐 지극히 익숙하고 평온한 풍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충된 감정과 이질성의 묘한 조화가 바로 우리의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이런 과도적 풍경을 이른바 ‘Korean Beauty’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터널 위에 위태롭게 집들이 자리잡은 그 풍경을 처음 보았을 때, 나에겐 그 모습이 마그리트의 그림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그곳의 풍경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산 자락에 얼기설기 자리잡은 판잣집이 몇 차례 도시정비를 거쳐 그렇게 전형적인 한국식 주택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 테고, 198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든든한 터전이었던 발 밑에 거대한 동공(洞空)이 뚫리게 된 것이다. 이런 낯선 인상조차 어느새 정감 있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익숙해질 무렵, 돌연 푸른 천막이 집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신축 아파트의 구조물이 솟아오르는 모습은 가히 초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가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회화가 그러하듯, 그런 아름다움은 애써 붙잡으면 이내 사라져버리거나 때로는 채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뒤편에 있던 낡은 담벼락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그러했다. 담 뒤편으로 가림막이 쳐지고 공사가 진행되더니, 2013년 미술관 개관 전에 완전히 철거되어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 벽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고 난 후에야 그곳을 소재로 5 점의 벽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우연히 그곳을 발견하고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만 해도 그 운명을 짐작하진 못했지만, 그날 뜬금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골목길로 나의 발길을 이끈 건 사라져가는 것들의 어떤 끌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역사와 기후와 시간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던 것들을 긴 호흡으로 되살린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지켜주지 못하는 것들에 따뜻한 시선이나마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는 그렇게 여전히 이행(移行) 중이어서 낯선, 영속적이지 않아서 아름다운 우리의 풍경을 위한 헌시이다.
A Landscape That Is No Longer There
When a newly built apartment structure rises like a mirage over the mountain behind the village, the mountain becomes a mere hill. But in my childhood memory, it was the sacred mountain of the village which was so deep that I got lost in it. The foot of a mountain cut off to make a road and the high-rise apartment buildings abruptly rising between beautiful forests and plains. The sense of speed here, which is always constructive, is quite threatening, but it is also an extremely familiar and peaceful landscape to us. Since this strange harmony of conflicting emotions and heterogeneity reflects our present, it may be proper to call this transitional landscape ‘Korean Beauty’ as many people say. When I first saw the landscape of houses perched precariously above the tunnel, it seemed as unfamiliar to me as René Magritte's painting. Of course, the scenery there would not have been like that from the beginning. Perhaps the shacks located at the foot of the mountain have undergone a few rounds of urban redevelopment to have the appearance of typical Korean-style houses. At last, in the 1980s, a huge hole was made under the feet, which had been a solid foundation of life. Around the time even this strange impression had become accustomed to me as a familiar Korean beauty, it was surreal to see blue tents suddenly replacing the houses and the structures of newly built apartments rising up. And autumn was deepening beautifully. Just like painting, such beauty disappears as soon as you grab it, or sometimes it is not there before you even get close to it. The same was true of the works about the old wall behi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A fence screen was put on the back of the wall and the construction was carried out. The wall was completely demolished before the opening of the museum in 2013 and is now gone forever. It was only after I realized all of the wall had vanished that I painted 5 murals based on the site. Even when I happened to discover the place and made up my mind to paint it, I had no idea of its fate. However, it may have been some kind of attraction to disappearing things that led me to an alleyway that day that I did not even know very well. I bring back all the history, climate and moments of the place from a long-term perspective. With the hope that a warm gaze will stay for a long time on all things that disappear and cannot be protected. This exhibition is a tribute to our landscape, which is beautiful since it is still in transition, unfamiliar and not perman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