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랑 (대표 원혜경)에서는 2018년 3월 14일(수)부터 4월 14일(토)까지 이정지의 80년대 단색조회화(單色調繪畫)를 중심으로 전시가 열린다. 수십 년간 흔들림 없이, 외길 모노크롬 작업을 해온 국내 유일무이한 여성 작가 이정지는 최근 포스트 단색 추상화가로 주목받고 있으며, 40년 역사의 선화랑이 자부심을 가지고 집중 조명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화면의 깊이와 행위의 표현에서 오는 시각적 세계와 그 초월적 세계에 몰두해왔다. 그것은 정신과 물질, 표면과 내면,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생성과 붕괴 등 서로 다른 세계를 통합 조율해 나가는 일이다. 단색의 화면은 롤러(roller)를 통해 캔버스 바탕 전체에 색이 깔리고, 그 표면이 나이프로 긁혀져 나타난다. 작가는 긁고, 쓰고, 지우고, 깔고를 반복해 궤적을 만들고, 이 궤적은 작가가 의식적으로 숨겨 놓은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작업은 습관적이고 일방적인 특성이 아니라 작가의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운 호흡과 신체의 움직임과 물성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다.
이번 전시에서 집중 조명한 작가 이정지의 80년대 작업은 모노크롬(Monochrome) 전개 시기로 평가받는다. 83년 이후부터 확고해진 이 방식은 ‘반복행위’가 주를 이루는 신체성, 촉각적 특징이 두드러진 작업으로 캔버스 전체가 회갈색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는 85년까지 『무제』 시리즈,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Ο』 시리즈로 작업해 오고 있다. 이 시기 작가는 안료를 긁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표면에 새기고 있다.
당시 그녀에 관해 평가로는 “여성의 작품으로 여겨질 수 없을 만큼 당당한 정공법(正功法)의 회화를 제시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자국(自國)에서도 결코 보인바 없는 독특한 작법세계---.”, “한국의 70년대 평면 주의와 모노크롬의 바탕 위에 그는 스스로 조형어법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계속되는 국내외 개인전과 국제 비엔날레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일본 무라마쯔 화랑과 후쿠오카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그의 기량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 있으며 이른바 한국모더니즘 계승의 중심주자에 속해있음을 증명해 주었다.”라는 평을 받았다.
갤러리 1~3층까지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2016, 2017년 선화랑 개인전을 통해 발표했던 2000년대의 근작들을 끌어낼 수 있었던 이정지 화백의 1980년대 작품부터 91년대 작품까지의 작품세계와 그 안에서의 작품의 변주, 그리고 작가의 깊은 호흡들을 좀 더 깊이 있게 감상할 기회가 될 것이다. 50년간 긁어내는 작업을 해온 작가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이정지 만의 축적된 다층적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