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스키장…화폭에 담아낸 오늘의 풍경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

뜨거운 초여름 날씨에 찾은 갤러리 1층 입구에서 처음 인사를 건네는 작품은 중견화가 이상원의 2011년작 ‘스키 리조트’다. 눈이 쌓인 겨울왕국에 시원하게 활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처럼 작게 그려져 있다. 200호 크기의 보기만해도 시원해지는 그림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자란 작가는 2000년대 이후 군중들이 몰려드는 휴양지를 찾아가 광활한 화폭에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정유미의 2021년작 ‘부드러운 호흡’은 폭 5m의 대작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다에는 파도가 부서지고 하늘과 물과 섬이 하나처럼 어우러진다. 정유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 풍경이 아닌 보는 이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영감을 통해 공감각적 변환히 이뤄진 추상적인 풍경이자 상상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추상화가 휩쓸고 있는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대작 풍경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전시가 열린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6월 18일까지 여는 ‘예술적 시각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침잠과 역동’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10명이 엄선됐다. 공성훈, 국대호, 김건일, 김동욱, 송지연, 윤정선, 이만나, 이상원, 정영주, 정유미의 작품 35점이 전시된다.

 

2021년 타계한 공성훈의 작품도 모처럼 만날 수 있다. 거친 바다 속 남자의 초상을 그린 ‘바닷가의 남자’는 대형 캔버스 속에 원인모를 긴장감과 불안감이 숨어있다. 낯설고 기이한 화풍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무’ 연작도 함께 전시된다.

‘달동네 작가’ 정영주는 ‘아스라히’와 ‘기억’ 등의 작품을 통해 유년시절 추억 속의 풍경을 끄집어낸다. 송지연의 ‘종이 울리다’도 산동네 서민들의 풍경을 차분하게 그렸다. 두 작가의 화풍은 닮은 듯 다른 개성을 뽐낸다.

도시의 변화를 나름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이만나의 2024년 신작 ‘깊이 없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윤정선의 ‘한강공원’은 여의도 수변 공원에서 마포를 바라보는 시선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인다. 숨가쁜 도시의 일상 속 명상을 유도하는 침잠의 시각을 담았다.

전시를 기획한 하계훈 미술평론가는 “동양화·서양화 등의 구분을 짓지 않고, 오늘의 풍경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작가들을 엄선했다”면서 “작가들은 공간에 투영된 개인의 경험과 보편적 가치를 포착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현대인들이 자연 속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여유로움도 작가들이 흥미롭게 표현한 화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June 4,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