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초월한 ‘붓의 마법’ 파토 보시치 韓 첫 개인전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배경은 화가의 작업실. 창문 밖엔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 듯 장밋빛 구름이 걸렸다. 테이블 위엔 각종 그림 도구와 겨울 풍경이 비치는 수정 구슬이 놓였고, 높이 솟은 탑 위엔 천사 같은 환영(幻影)이 떠다닌다. 빠른 속도로 탑 주위를 돌고 있는 말 한 마리가 그림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솟아 있는 탑도, 달리는 말도 모두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이 그림 제목은 ‘마법적 균형’.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칠레 작가 파토 보시치(46)의 국내 첫 개인전 ‘마술적 균형: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것, 꿈의 풍경과 영혼의 상징적 지형을 가로질러서’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그림엔 남미의 대자연과 유럽의 문명, 상상력이 들어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가 마법처럼 섞여 있는 초현실적 풍경화는 작가의 노마드 인생과 닮았다. 18세에 칠레를 떠나 홀로 4년간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가 “난파한 배가 해안 가까이 떠밀려 온 것처럼” 영국에 정착했다. 박물관·미술관이 많고,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영국에 끌렸다고 했다. 고전 문학과 그리스 신화를 깊이 연구했고, 런던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수시로 찾아 유물과 고전 회화를 감상하며 영감을 얻는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언 로버트슨 홍익대 교수는 “보시치는 자연과 고전 세계, 샤머니즘에서 영감을 얻는 매우 독특한 예술가”라며 “그는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자이며, 과거를 현재에 불러와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했다. 보시치의 유화 22점과 드로잉 46점이 나왔다. 8월 3일까지. 무료.

July 9,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