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길에서 곡예를 하듯 두 손을 놓은 채 아슬아슬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 왼편은 노을 진 도시인데 오른편으로는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다.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칠레 출신 작가 파토 보시치(46)의 'Riding Hero(자전거 타는 영웅)'(2021)이다. 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칠레와 현재 작가로 정착해 있는 런던이라는 두 이질적 세계 사이의 예술가로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통해 작가는 하나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또 다른 세계로 이야기를 확장하는 동시에 두 세계 간 균형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펼친다.
보시치는 캔버스 위에서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고, 때로는 고대 문명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를 탄 이의 몸통은 박물관의 토르소 조각상을, 얼굴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사랑의 여신 비너스상을 닮았다. 페달을 밟는 다리도 여러 문명에서 신화적 존재로 등장하는 말처럼 그렸다. 이처럼 역사와 일상이 맞닿은 장면들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그림을 통해 보시치는 예술가로서 신화와 문화, 환상의 영역을 탐구하고 현실과 잠재의식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신의 개척 정신을 나타내고자 했다.
파토 보시치의 개인전 '마술적 균형: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것, 꿈의 풍경과 영혼의 상징적 지형을 가로질러'가 오는 8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풍경과 환상을 생동감 있고 매끄럽게 연결한 반추상 풍경화를 중심으로 회화 22점과 드로잉 46점 등 총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개인전 오프닝을 위해 방한한 보시치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게 돼 기쁘다. 한국 관객들이 내 그림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화 작품 'Conjuring of the Tower(탑의 마법)'(2023)도 그의 자전적 이야기다. 창가 책상에는 여러 개의 붓이 정리돼 있고, 벽쪽으로는 그림이 기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엉뚱하다. 책상 위로는 탑이 둥둥 떠 있고 그림 앞에는 승마복 차림의 작은 여행자가 보따리를 멘 채 지나가고 있다. 신발을 벗어둔 책상 아래에선 나무가 자라나 있고 또 다른 여행자가 도시의 교차로를 향해 걷고 있다. 런던의 작업실에서 겪은 상상 속 마법 같은 순간들과 자신의 자유로운 여정을 화폭 위에 펼친 것이다. 박물관에서 본 마야데비 사원, 이집트 피라미드도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서도 창문 밖으로 칠레의 바다가 등장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다.
보시치는 물리적으로 두 공간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예술사와 마주하기도 한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등을 매일같이 찾아 아시리아, 메소아메리카,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같은 유물 컬렉션과 고전 회화를 감상하면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그 그림을 완성하는 식이다.
드로잉 연작 'Future Past'가 대표적이다. 그중 한 작품은 박물관의 이집트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성이 강조된 여성을 드로잉한 뒤 작업실에서 그 여성과 뒤엉켜 있는 남성을 그려 완성했다. 스핑크스와 말, 부엉이 등 예술사에 등장하는 동물과 한몸처럼 그린 원초적 모습의 인체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보시치는 열여덟 살에 고향인 칠레를 떠나 혼자서 스위스, 독일, 헝가리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 2000년 런던에 정착했다. 현지에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해 2004년 유럽 최대 규모 종합예술대학인 런던 예술대의 6개 칼리지 중 하나인 캠버웰 예술대학(CCA)을 졸업했다. 유럽과 남미, 미국에서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고, 2019년에는 박물관 소장품과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의 기획전 '영감: 상징적 작품들'에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보시치는 "나는 유럽의 모든 시대 예술가가 현대적이라고 느낀다. 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들을 나만의 서커스에 초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