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작가의 물방울은 단순한 이슬이 아니다. 물방울 표면에 삼라만상이 반사돼 비치는 하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물방울 하나하나가 각각의 우주를 품는다. 그 안에서도 잎이 자라고 싹이 돋는다.
그런데 이슬이란 본디 슬픈 자연이지 않던가. 소멸이 예정돼 있어서다. 바닥으로 떨어지든 햇빛에 증발하든 사라지므로, 그것은 인간 삶의 응축본 같다. 제행무상(諸行無常). 하지만 적어도 그 순결함을 바라보는 만큼은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이영수 개인전 'Gems found in nature'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21일 만난 이영수 작가는 "물방울은 햇빛을 받으면 주변 사물을 그대로 몸에 품는다. 그 한 방울을 보는 시간은 때 묻은 우리가 순수해지는데, 그 찰나의 이미지와 찰나의 마음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내추럴 이미지(natural Image)'는 크고 작은 물방울 수십 개가 청초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형상이다. 우측 하단의 가장 큰 물방울에도 이파리가 거울처럼 그려졌다. 멀리서 보면 사진인가 싶을 만큼 정교하지만, 사진이 아니다. 이 작가는 "수채화도 아닌 유화이기 때문에 칠하고 말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60호 작품 한 점에 몇 달 걸렸다"며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도 물방울은 완성되고 있다. 그게 작품의 삶"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회화 40여 점 가운데 물방울 연작이 '초록의 생기'를 배경 삼는다면, 노란 은행잎을 환희의 융단처럼 그려낸 작품들은 '황금의 절정'을 말해준다.
생각해보자. 은행나무는 초록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노란빛, 때로 찬연한 황금의 색이 은행이다. 그건 소멸에 임박한 색채이지만 아름다운 죽음이란 모름지기 절정의 직후이지 않던가.
작가가 거리에 떨어진 은행잎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내추럴 이미지' 작품들은 자세히 보면 잎이 3~4개의 층(層)으로 나뉘어 있다. 깊을수록 흐릿하고, 가까울수록 선명하다.
한 층씩 겹(레이어)을 쌓아올리면서 그는 깊이감을 더한다. 깊이를 만들어낸 '수천, 수만 번의 붓질'을 상상하노라면 경이감의 명상에 이른다. 이 작가는 "거리에 가득 떨어진 노란 은행잎은 가을의 절정에 이르러 자연의 융단이 된다. 물방울 한 점에, 낙엽 한 점에 찰나의 기억들이 숨 쉰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